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1 카빈 (문단 편집) === 활약상 === 총 자체가 당대의 [[기관단총]]보다 '''훨씬''' 가벼울 정도로 엄청나게 가볍고 21세기가 된 지금도 M1 카빈보다 가벼운 기관단총은 몇 개 없다. 카빈이 약 2.5kg 남짓인데 반해 [[톰슨 기관단총]]과 [[M1 개런드]]는 그 두 배에 가까운 무게였고 [[H&K MP5]]보다도 수백 그램 정도 가벼우며, 기관단총 중에서 가벼운 축에 드는 [[H&K UMP]]와 무게가 비슷하다. 나무와 쇠로 만든 구시대적인 디자인에 총열 길이마저 지금 기준으로는 긴 편인 18인치나 되는데도 이렇게 가볍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물론 이렇게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총열을 상당히 얇게 만들었다. 원래 용도대로 중근거리 반자동 사격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자동 사격이나 중장거리 사격에는 총열의 내열성이나 집탄성 면에서 불리하단 평을 받았다.] 또 장탄수도 많으며 반자동 사격이 되고 고장도 매우 적었다. 원래 설계가 자동 사격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므로 방아쇠를 빠르게 당기면 자동소총 못지 않은 빠른 발사 속도도 낼 수 있었다. M2 카빈은 실제로 자동 사격이 가능해 비싼 톰슨 기관단총을 일부 대체하기도 하였다.[* 톰슨 기관단총이 구조를 최대한 간략화 한 결과 생산비가 225달러에서 45달러까지 떨어졌지만, M2 카빈은 처음부터 생산비가 45달러였고, 톰슨보다 위력이 좋고 사거리도 더 길고 가벼웠다.] 때문에 [[공수부대]]나 해병대, 일반 [[보병]]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거기에다 제작비도 85달러나 드는 [[M1 개런드]]보다 40달러 더 저렴해서, 약 540만 정을 생산한 개런드보다 50만 정 더 많이 생산되었다. 카빈을 위해 개발된 탄환 ".30 US Carbine"(7.62mm)은 M1 개런드와 구경은 같으나 형태는 소총탄보다는 권총탄에 가깝고 발사시 특성도 권총탄과 소총탄의 중간 정도다. 원래 코요테나 여우 정도의 소형동물 수렵용 탄인 .32 Winchester Self-Loading를 림리스화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런드와 구경을 같게 했을 뿐인 것이다. 실제 위력도 중소형 사냥감 정도를 잡는데 적당하며, 사슴 사냥용으로는 간당간당한 수준이다. 당시에는 반자동/자동소총으로 불렀다.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화력은 아닌데 총구의 에너지만으로는 [[AK-74]]의 [[5.45×39 mm]]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탄속이 훨씬 느리고 탄두 형상이 뭉툭해서 결국 기관단총과 자동소총 사이의 애매한 총이 되었는데 설계 시 약간만 더 욕심을 부렸더라면 [[돌격소총]]의 시초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다만 돌격소총은 총기의 분류이지 총기의 형태가 아니다. 히틀러가 이름 붙였기에 등장한 분류이기 때문에 돌격소총이 아닌 다른 분류이름이 등장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예 착검 장치가 없어 카빈으로 [[총검술]]을 연습하는 일이 없었고, 한국 예비군용은 아예 착검 장치를 떼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물론 2차 대전 중 일선의 요구로 착검 장치가 추가되고 전용 [[총검]]인 M4가 지급되는데, 이 M4 총검의 디자인은 M16에 착검하던 [[M7 총검]]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이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대인 전투용(인명 살상용)으론 매우 효과적이란 평을 받는다.] 대신 지금보다 체구가 작은 2차 대전 당시 미군, 90년대 이전 한국 예비군에게는 딱 맞는 사이즈였다. 사용하는 탄이 [[7.62 mm]]라고 하니까 AK-47 등의 AKM 계열 돌격소총과 같은 [[카트리지]]를 쓰는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카빈의 카트리지는 [[7.62 mm#s-2.1.7|7.62x33mm]]로 아담한 총탄이고[* 권총탄인 .357 매그넘(9×33mmR)보다 조금 가는 정도.] AK의 카트리지는 [[7.62×39mm]]로 이보다 훨씬 크다.[* 7.62x33은 생긴것도 매그넘 권총탄과 비슷한 반면, 7.62x39는 탄피에 테이퍼각까지 들어간 두툼한 소총탄이다. 운동에너지 차이는 약 1.5배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널리 쓰였고 이래저래 명성이 높은 총기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못 믿을 총 취급받기도 했다. [[6.25 전쟁|한국 전쟁]] 당시엔 도망가는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이 이불(바리에이션으로 방한복도 있다.)을 뒤집어 쓰고 도망가는 걸 사격했으나 총에 맞고도 계속 도망갔다는 낭설도 있다.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중공군의 방한복(방탄복이 아니다.)조차도 원거리에서는 뚫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접수될 정도였다. 소총 등의 제대로 된 보병용 화기가 미군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중공군이 그냥 소총 사격을 무릅쓰고 접근해 수류탄을 던지는데 이걸 M2 카빈으로 저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실제로는 [[7.62mm|7.62mm(.30 카빈)]]탄이 겨울옷을 못 뚫는 게 아니었다. 여기에는 이견이 몇가지 있는데, 일단 첫째로 카빈탄이 약해서 적군이 맞고도 도망갔다는 소문의 근원지가 장진호의 해병대원들이 아니다. 주로 후방 근무 하는 병과에서 이런 소문이 퍼졌다고 하며, 실제 장진호를 경험한 병사들은 혹한으로 인해 카빈 카트리지와 카빈이 제대로 작동을 안한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또한 자동사격으로 제압(Suppress) 효과를 보려면 상대가 총에 맞을까봐 두려워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중공군도 [[국공내전]]에서 실전을 수도없이 경험한 베테랑 출신들이라 전혀 멈추지를 않았다. 또한 여기에는 해병대원들이 난생 처음 겪는 혹한의 추위에 보급품도 떨어지고 식량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동상 환자와 이질 환자가 속출하며 다 죽어가는 와중에 힘겹게 중공군에게 총을 쐈다는 점[* 즉 자기들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 제대로 못맞춘건데, 쐈는데 못맞췄다고 하기는 뭐하니까 "총이 고장난 거 같아요", 또는 "맞았는데 도망갔어요"라고 변명 했다는 것이다.]도 반영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45~65m 정도의 거리라면 M2 카빈의 연사로도 어느 정도 명중률이 나오지만, [[척탄병]]은 대충 50야드(45m) 이내로만 접근하면 수류탄을 던져넣을 수 있는 개싸움의 영역이니 팔자 좋게 사격전이나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중공군이 카빈탄을 맞고도 버티는 것이라 오인한 미군은 좀더 강력한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전투소총]]을 개발하게 되고, 이것이 비운의 제식소총인 [[M14 소총]]이다. 하지만 근거리에서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명중률이 확보되는 180m(200yd) 이내[* 제원상 유효 사거리는 270m(300yd)이지만, 180m를 넘어가면 명중률이 낮아져서 실질적인 유효 사거리는 180m라고 봐야 한다.]의 근거리에서 적과 조우할 경우 초당 12~13발(분당 750발)의 연사속도 덕분에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야간 정찰에서 수색대가 장비하는 M3 카빈이 대활약했는데, M3 카빈은 M2 카빈에다가 적외선 스코프를 증설한 물건으로 어둠을 틈타 중공군에게 접근한 후 연사로 일망타진하는 작전이 큰 효과가 있었다. 물론 오늘날 미군이 사용하는 야시경은 당시엔 꿈도 꿀 수 없는 물건이었기에, 분대 중 한명은 자동차 전조등만한 크기의 적외선 램프가 달린 M3를, 나머지는 길다란 망원경처럼 생긴 적외선 스코프가 달린 M3를 소지하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M3는 겨우 2,000여정밖에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미군의 야간 작전의 기틀을 마련한 소총이다. 다만 전설적인 [[장진호 전투]] 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애초에 추운 데서 쓰려고 만든 총이 아니였던 이유가 컸는지, 카빈이 죄다 맛이 가서 병사들이 카빈을 내다버리고 어떻게든 개런드를 손에 넣으려고 했는데, 장약량이 적어 작동 동력이 비교적 약한데다가 일단은 소총인지라 찬바람에 계속 노출되다보니 총을 격발하더라도 제대로 화약이 전부 타오르질 않고 불완전 연소하여 작동을 위한 가스압을 제대로 못 만들었기 때문. 개런드 같은 30-06 소총탄을 쓴 무기들이야 어떻게든 딱 한발만이라도 발사하고 나면 화약이 워낙 많으니 최소한 차탄을 쏠 만큼의 가스를 만들 수 있었고 총기도 좀 데워지므로 몇 발 쏘다 보면 적어도 전투 중에 맛이 가는 일은 적었는데, 이놈의 카빈은 정상적인 작동을 할 정도로 총을 데우기 위해 필요탄 격발수가 많았고 겨우 데워도 금방 식어버리면 또 그짓을 반복해야했다. 뭐 장진호 전투는 영하 20-30도의 혹한이라 기관단총도 사이좋게 맛이 가는 경우가 많았고 기관총이나 소총도 가끔 가다 몇 발 쏴서 데워줘야 했을 정도로 막장이였으니 이해 할 만 하지만, 그건 딴 사람들 이야기지 전투 당사자인 보병들 입장에선 자신의 생명을 지켜줘야 할 소총이 중요할 때 맛이 갔으니 치명적이었다. 그걸 본 미군들은 악평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미 육군이 M16의 채용에 거부감을 표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작은 탄환은 극한 상황에선 쓸모 없다는 이미지가 생겨버린 것이다.[* M1 카빈이 실전에서 보여준 사례는 훗날 한국군 제식 소총으로 채용되는 K2 소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극심한 연교차를 대비해 가스조절기를 부착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주 분실해 본 사람은 그냥 M16처럼 고정식으로 만들면 안 되나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M16은 장진호 전투처럼 극한기 전투에서는 기관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비교적 더 높다.] 문제는 그 이후론 미군이 이렇게까지 추운 곳에서 싸운 적이 없다는 것.[* 이러한 저온에서의 부족한 신뢰성은 쇼트 스트로크와 중간탄의 시너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현대의 [[H&K HK416|HK416]]도 중간탄과 쇼트 스트로크의 조화로 추운 지방에서는 신뢰성이 의심받는다. 쇼트 스트로크 방식은 여러 변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